서울 서대문 갈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서울 서대문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독립문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독립문 소개
1898년 1월 자주독립의 상징물 건립을 위하여 독립협회의 주관으로 이루어졌으며,기금은 협회가 모금한 돈으로 충당되었습니다.
중국 사신을 맞이했던 영은문 자리에 한국인 기사 심의석에 의해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구축한 최초의 서양식 건물입니다.
높이 14.28m, 넓이 11.48m로 프랑스 개선문을 모방하여 만든 건축물입니다.
1979년 성산대로 건설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독립문은 조선 말기 독립협회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였지만, 일본이나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기보다 주로 중국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강조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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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기본 정보
서대문독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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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독립공원 소개
독립공원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1960년대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던 서울구치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서울구치소가 1987년 11월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감에 따라 감옥 7동, 사형장, 지하여자감옥 등을 복원하고, 탑골공원에서 3·1운동기념탑을 이전하였으며, 1992년 영은문 주초와 연계하여 1992년 8월 15일 독립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독립협회에서 건립(1895년)한 독립문(사적)이 있으며 조선시대 중국사신들을 영접하던 독립관(당시는 모화관이라 하였음)을 복원(1996년)하여 그 내부에 순국선열위패 2,327위가 봉안되어 있고, 독립문 바로 앞에는 영은문주초(사적 제33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외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서재필박사 동상 등이 있습니다.
또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자 서대문구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별도로 관리·운영하고 있습니다.
* 면적 : 113,021.7m2(34,18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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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독립공원 기본 정보
운영 시간 연중 개방
주차시설 있음
쉬는 날 연중무휴
무악산 동봉수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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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산 동봉수대 터 소개
변란 등을 횃불로 알려 위급함을 전하는 봉화터가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5군데 있었는데, 그 중에서 2군데가 안산(무악산)정상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평안도 강계에서 시발, 직봉 78 간봉 22처를 거쳐 산 "동봉수"(제3봉수로)에서 전해져 남산으로 최종 보고되었고 다른 하나는 평안도 의주에서 시발, 서해안을 따라 직봉 71 간봉 35처를 거쳐 안산 "서봉수"(제4봉수로)에 전해져 남산으로 전달되었습니다.
현재 2개의 봉수대 중 동봉수대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 사업 일환으로 남산중앙봉수대와 연계하여 제3봉수로의 봉화를 올리기 위해 봉수대가 멸실된지 100년 만인 1994년 8월 30일 서대문 향토사연구회의 자문을 받아 복원하였습니다.
이 봉수대의 면적은 381㎡, 상부 연대(烟臺) 108㎡, 하부연대 307㎡ 봉화연조대의 높이 3.2m로 자연석을 사용, 축조하였습니다.
서봉수대는 동봉수대로부터 100m 떨어진 현 군부대의 통신탑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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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산 동봉수대 터 기본 정보
서울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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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소개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은 이 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서 스팀슨관에 이어 지어진 교사로서 학관 (學館)이라 불러왔다.
연세대학교가 위치한 연희동은 이곳에 정종이 태종에게 양위한 후 살았던 연희궁이 있었기 때문인데, 연희궁의 위치는 지금의 연세대자리에서 연희입체교차로가 있던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신촌 캠퍼스를 마련한 초창기에 지어진 스팀슨관 (1920년), 아펜젤라관 (1924년), 언더우드관은 ㄷ자형으로 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 언더우드관은 중앙에 위치한 가장 웅장한 건물입니다.
나아가 정문에 들어서면 캠퍼스의 중앙을 가로지른 백양로의 끝자락, 캠퍼스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건물의 5층으로 된 중앙의 탑은 이 캠퍼스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언더우드관은 연희전문학교 창립자인 언더우드(H.G.Underwood)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형인 존 티 언더우드(John T.Underwood)의 10만달러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1921년 짓기 시작하여 1924년에 완공되었으며, 감독은 당시 화학과 교수였던 밀러가 담당했습니다.
구조는 본관건물인 스팀슨관과 같은 돌구조로서 지하 1층,지상 3층이며, 탑부분은 5층입니다.
평면은 장방형으로 중앙에 현관부를 두고, 동서로 중앙복도를 두었습니다.
남북 양쪽에는 교실과 계단실을 두고 좌우 동서 양끝에는 큰 강의실을 두었습니다.
본래 문과대학 전용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대학본부 건물로 총장실 등 주요 행정부서가 있습니다.
* 면적 - 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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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기본 정보
옥천암(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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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암(서울) 소개
옥천암는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2동 8번지 북한산 끝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사찰입니다.
관세음보살은 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 또는 관세음자재보살(觀世音自在菩薩)이라고도 하며 보통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 부른다.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서원으로 하는 관음보살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화엄경』, 『법화경』, 『아미타경』, 『능엄경』을 중심으로 그 신앙이 전개됩니다.
각 경전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모든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어떠한 고난이나 재액에서도 반드시 해탈을 얻게 됩니다고 합니다.
옥천암(玉泉庵)은 동해의 낙산 홍련암(紅蓮庵), 서해의 강화도 보문사(普門寺), 남해의 보리암(菩提庵)과 함께 4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옥천암에 있는 관음보살상 때문인데, ‘보도각 백불(普渡閣 白佛)’로 불리는 이 관음보살은 많은 영험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이 석불에 기도한 일이 있고, 또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씨(閔氏)도 아들인 고종을 위해서 자주 찾아와 기도하였습니다고 합니다.
삼각산의 맥이 비봉과 향로봉을 거쳐 인왕산으로 이어지기 직전 삼각산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한 옥천암은 서울이 대규모로 도시화되기 전만 해도 옥같이 맑은 물이 흘렀습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절 이름 또한 옥천암이라 불리었던 것입니다.
[옥천암 마애좌상(보도각 백불)]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1973.06.07 지정)
보도각 백불의 정확한 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마애보살좌상(弘恩洞 普渡閣 磨崖菩薩坐像)'입니다.
흰색의 호분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기 때문에 백불(白佛) 또는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도 합니다.
마애불상은 근래에 세워진 정면 1칸, 측면 2칸의 보도각이란 전각 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서울로 도읍을 정할 때 이 석불에 기원을 했으며, 조선후기에는 고종의 어머니 흥선대원군의 부대부인 민씨도 아들의 천복을 빌었는데 이때부터 하얗게 칠을 하였습니다고 합니다.
머리에는 꽃무늬가 장식된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어깨를 따라 팔꿈치까지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비교적 둥근 얼굴은 눈이 가늘고 입이 작게 표현되어 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옷은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신체는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입니다.
옷주름은 선이 깊지는 않지만 신체 전반에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손은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아미타불의 손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로서 북한산 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과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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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암(서울) 기본 정보
백련사(서울)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백련사(서울) 소개
백련사는 신라 경덕왕 6년(747)에 진표율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당시는 정토사라 하였는데 조선조 정종 원년에 백련사라 개칭하였습니다.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이 왕위를 태종에게 물려주고 난 뒤에 요양차 이 곳에서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조선 임금 세조의 딸 의숙옹주가 20세에 남편을 잃고 비통함을 달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여기서 해동묵(엄나무)을 보고 인생의 참뜻을 깨달았습니다고 합니다.
그 후 의숙옹주의 원당으로 정하면서 이름을 백련사로 바꾸었습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경복궁에서 볼 때 서쪽에 있어서 "서방정", "정토사"라고 하였는데 어느 여름날 연못에서 갑자기 하얀 연꽃이 피어올라 [백련사]라고 명칭을 바꾸었습니다고 전합니다.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바로 재건하였고, 그 뒤로도 여러차례 중창을 거듭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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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서울) 기본 정보
봉원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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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서울) 소개
신라 제 51대 진성여왕 3년(889년) 도선국사가 현 연세대 터에 창건하고, 반야사라 하였습니다.
제21대 영조 24년(1748년) 찬즙, 중암 두 스님에 의해 지금의 터전으로 이전하였고,영조는 친필로 봉원사라 현액하였으며, 신도들 사이에는 이 때부터 새로 지은 절이라 하여 "새절"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제26대 고종 21년(1884년) 발생한 갑신정변의 주축을 이룬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파 인사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이동인 스님이 5년간 주석하였던 갑신정변의 요람지이기도 했습니다.
1911년 주지 보담스님의 중수와 사지의 확보로 가람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1945년 주지 기월스님, 화주 운파스님과 대종의 원력으로 광복기념관을 건립하였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당시 병화로 광복기념관이 소진되었고, 이때 영조의 친필 현판 등 사보와 이동인스님 및 개화파인사들의 유물이 함께 소실되었습니다.
1966년 주지 영월스님, 화주 운파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소실된 염불당을 중건하였는데 이 건물은 대원군의 별처였던 공덕동 아소정을 옮긴 것입니다.
현재 봉원사는 한국불교의 전통 종단인 태고종의 총본산으로서 전법수행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바 대중은 60여 스님, 신도는 10만을 헤아리며 박송암 스님(2000년 2월 입적), 이만봉스님이 주석하며 후학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교육기관으로는 옥천범음대학이 있고, 신행단체로는 관음회, 화엄법회, 청년회, 학생회, 어린이 인경회 등 법회가 개최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교도소, 소년원, 양로원, 고아원,군부대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교화활동을 펼치고 있어 태고종 총 본산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 영산재(靈山齋)
봉원사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인 영산재 보존회 주최로 세계평화 및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영산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영산재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는 도량을 시공을 초월하여 본 도량으로 오롯이 옮기고 영산회상의 제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입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다 함께 진리를 깨달아 이고득락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산재는 공연이 아닌 장엄한 불교의식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 삶과 죽음으로 갈라진 우리 모두가 불법 가운데 하나가 되어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며, 부처님 전(前)에 행하는 최대 최고의 장엄한 불교 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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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서울) 기본 정보
연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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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로 소개
신촌전철역에서 연세대학교까지 이어지는 연세로는 신촌의 중심거리입니다.
이 길을 중심으로 사잇길이 뿌리처럼 뻗어 있습니다.
연세로는 1999년 서울시가 '걷고 싶은 거리'로 지정한 이후 가로수 정비, 신촌거리 지도 부착 등의 조성사업을 했습니다.
각종 음식점, 페스트푸드점, 커피숍, 상점 등이 포진하고 있으며 오후가 되면 길거리 음식도 맛볼 수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도로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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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로 기본 정보
서울 연세대학교 스팀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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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세대학교 스팀슨관 소개
연세대학교에 최초로 세워진 건물로서, 1919년 착공하여 1920년 완성된 돌로 지은 2층 건물입니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 언더우드(한국이름 원두우) 목사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서 항구적인 학교건축을 위해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던 찰스 스팀슨의 기부금을 얻어놓고 세상을 떠난 뒤, 후임교장인 에비슨이 그 기부금으로 건립한 것입니다.
미망인인 언더우드 부인이 초석을 놓았고 당시 화학과 교수인 밀러가 공사를 감독하였습니다.
설계자는 알 수 없으나 당시 미국인 건축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설계와 기본계획을 작성하였습니다고 합니다.
장방형의 평면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고딕양식의 건물입니다.
면적 -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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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세대학교 스팀슨관 기본 정보
지금까지 서울 서대문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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