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 갈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대구 북에서 놓치면 아쉬울 베스트 10 관광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 순위를 참고하여 선정되었으며, 다채로운 풍경과 흥미로운 체험이 가득한 명소들을 엄선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소중한 추억을 쌓고 싶은 연인, 또는 새로운 모험을 찾는 여행객들에게도 완벽한 여행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팔거산성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팔거산성 소개
대구팔거산성은 금호강과 대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함지산(287.7m)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으며 산 정상을 돌아가며 축조된 테뫼식 산성입니다.
함지산은 산의 모양이 함지를 엎어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함지산 또는 함지의 방언인 방티산이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팔거산성도 함지산성 또는 방티산성으로 불렀습니다.
다양한 역사기록을 통해 팔거산성이 위지한 지역의 명칭이 팔리현(삼국), 팔거현(고려), 성주목의 팔거현(조선), 팔거(이칭 칠곡) 등으로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팔거산성의 옛 명칭인 독모성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행정구역 이름을 따라 노곡동산성이라고도 합니다.
발굴 조사 결과 신라시대 산성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식인 현문식 구조, 곡성 등이 신라시대 축성양식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고 완만한 경사의 성벽, 곡성과 성벽의 접합부 축조방식 등을 통해 해당 산성만의 독특한 축성 양식이 있습니다는 점에서 가치가 뛰어나다.
성내에 공동묘지와 헬기장, 방공호 등이 들어서 산성의 일부가 훼손되었습니다.
2015년 함지산 내 인접한 대구 구암동 고분군과 함께 팔거산성의 현황 조사와 유적의 보존 관리 및 정비 활용 방향을 설정하기 위하여 정밀 지표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등산로를 정비하여 운암지수변 공원에서 출발하는 운암지 만리길도 개설하였으니 함지박을 닮은 산과 운암지의 아름다운 수변공원의 정취를 함께 즐기는 대구 역사문화 밸트로 옛사람들의 삶을 그려보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팔거산성 기본 정보
홈페이지 ▪ http://www.buk.daegu.kr/
▪ http://www.cha.go.kr
주차시설 있음
운암지 수변공원 공영주차
요금
- 최초 30분 : 400원(30분초과시 10분마다 200원)
- 일주차 : 4,000원
운암지 수변공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운암지 수변공원 소개
운암지 수변공원은 함지산 아래 운암지에 조성된 수변공원입니다.
대구북구 8경의 제3경이며 대구 시민들이 즐겨찾는 공원으로 물과 산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입니다.
운암지는 대략 일제강점기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함지산을 비롯하여 해발 고도 200~300m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계곡에 조성되었고 인근 칠곡 들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였다.
이곳 수변공원은 대구 칠곡3지구에 대규모 택지개발 이후 쓸모가 없게 된 저수지를 자연 그대로 보전하여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조성되었습니다.
수변공원에는 높이 10m, 폭 25m 규모의 인공폭포인 벽천폭포, 저수지를 가로지르며 수변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수변 데크로드(약160m) 및 팔각정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초화류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제비붓꽃, 수질정화 식물로 부채붓꽃,수련 등이 식재되어 상세한 안내판을 통하여 생태학습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름날엔 기온을 낮추기 위해 설치한 쿨링포그와 물고기, 오리가족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있습니다.
공원내에 분수, 수변무대, 산책로, 어린이놀이시설, 계류, 체육시설, 파고라, 정자 등을 갖추고 있어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쉼터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둘레길에서 달 포토존, 움직이는 물고기, 수달 등 생동감 있는 로고라이트가 야간 볼거리를 제공하여 야간 산책 힐링터로도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바로 이웃하여 대구 구암동 고분군, 팔거산성누리길이 자리하니 자연과 함께 역사문화를 느끼며 산책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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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지 수변공원 기본 정보
석조부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석조부도 소개
경북대학교 박물관 야외에 대구 산격동 연화 운룡장장식 승탑과 대구 산격동 사자주악장식 승탑 2기의 석조부도가 있습니다.
두 석조부도 모두 대구의 일본인 사택에 있던 것을 1958년 현재의 위치인 경북대학교 야외 박물관으로 옮긴 것으로 원래 승탑이 세워진 터와 이 승탑의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대구 산격동 연화 운룡장식 승탑'은 고려시대 팔각원당형부도의 특징이 잘 발휘된 걸작품으로 탑신, 옥개에 비해 기단부가 비대한 감이 있으나 안정되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지대석 위에 하대, 중대, 상대가 있으며 하대석과 중대석에서 고려시대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중대석은 8각으로 원에 가까운 표면에 용문이 조각되었는데 당시 장인의 예술 감각을 엿보게 합니다.
하대석은 방형으로 각면에(6판씩 24판) 조각되어 있습니다.
8각의 탑신석각면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 사천왕입상이 조각되었습니다.
옥개석도 8각으로 상부에 우동이 뚜렷하고 경사가 급하다.
상륜부에는 연꽃이 조각된 보륜형의 돌이 얹혀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높이는 274cm이며 지대석의 너비는 157cm입니다.
'대구 산격동 사자 주악장식 승탑'은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아 각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위에 탑신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입니다.
네모진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아래받침돌 옆면에는 사자를 새겨 놓았고 윗면에는 구름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였습니다.
낮은 가운데 받침돌은 모서리를 죽이고 각 면마다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겼다.
윗받침돌은 가운데 띠를 돌리고 아래·윗면에 소박하면서도 큼직한 연꽃을 조각하였습니다.
사리를 모셔놓은 탑신은 낮은 편이며,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 모양을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과 보살상을 조각하였습니다.
넓은 지붕돌은 밑면에 향로와 비천상을 아름답게 새겼으며, 처마부분은 목조건축의 지붕양식을 따라 2중의 서까래를 촘촘히 본뜬 조각이 있습니다.
윗면에는 연꽃이 둘러져 있으며 그 위의 4면에는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새인 가릉빈가를 조각한 노반(머리장식 받침)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 승탑은 지붕돌 일부가 깨지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위아래의 비례가 잘 맞아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각 부분의 조각이 웅장하고 뛰어나며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석조부도 기본 정보
홈페이지 대구 산격동 연화 운룡장식 승탑
https://www.heritage.go.kr
대구 산격동 사자 주악장식 승탑
https://www.heritage.go.kr
운영 시간 상시 개방
주차시설 가능(경북대학교 주차장)
쉬는 날 연중무휴
구암서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구암서원 소개
구암서원은 서침, 서거정, 서해, 서성 등 달성 서씨의 선조를 모시는 곳입니다.
1665년 창건한 건물로 처음에는 연구산에 있었습니다.
1675년(숙종 1) 귀계 서 침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다가 1718년(숙종 44) 동산동으로 이전하면서 사가 서 거정 선생을 합향하고 그 후 약봉 서 성 선생과 함께 서해 선생을 합향하고 그 후 약봉 서 성 선생과 함제 서해 선생을 추향하였습니다.
경내에는 강당, 숭현사, 비각, 제수청 등이 있고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숭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 포집의 맞배지붕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동산동 일대의 주변 환경이 서원 입지로 부적합하여 산격동 연암공원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였습니다.
구암서원 기본 정보
송계당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송계당 소개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고려 후기 충신 구홍과 조선 후기 의병장 구회신을 기리는 재실 송계당은 1960년에 중건하였으며, 후손 구현이 중건 기문을 썼다.
고려말 충신이었던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시문정공 송은 구홍과 그의 8세손이며 조선조 임진왜란 때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첨정공 계암 구회신의 절개와 위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659년(효종, 10년)에 세운 건물인데 두 분의 아호를 따서 당호를 송계당이라 하였습니다.
가구는 3량 집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대청양쪽의 툇마루는 대청보다 한단 높고 난간이 둘러 쳐져 있습니다.
제고물 반자로 천정의 경사가 매우 낮고, 대공은 원형 판대공으로 되어 있으며 1960년에 중건하였습니다.
송계당 강당에는 기문과 시가 편액되어 있으며, 송계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무태 지역의 선비 정신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웃하여 현손이 거주하고 있는 능성세가가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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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당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www.buk.daegu.kr/tour/index.do
http://www.cha.go.kr
운영 시간 상시 개방(능성세가에 현손 거주/ 사전 양해)
주차시설 있음
능성세가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능성세가 소개
능성세가는 일제강점기에 중건된 전통 가옥으로 대를 이어 살던 능성구씨 집안의 종가 건물입니다.
무태(서변동) 지역에 자리 잡은 능성구씨의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서변동에 정착한 계암 구회신(1564~1634)입니다.
구회신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인 중 한 명인 문절공 좌승정 구홍의 8세손이기도 하다.
구회신은 서변동에 정착하고 2년이 지난 1599년에 무과에 응시하여 합격한 후 관직이 어모장군 행훈련원첨정이 되었으나, 조정이 당파 싸움으로 어지러워짐을 보고 관직을 버리고 서변동에 돌아와 은거하였습니다.
구회신의 후손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세대를 이어 가며 살던 집이기에 필요할 때 보수하거나 고쳐 짓곤 하였습니다.
후대에 유학자를 출세시켜온 본체와 창강서실 외 삼동(三棟)이 있습니다.
항일 독립유공자인 소봉 구찬회(1890~1910)의 생가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송계당, 물소재 등 능성구씨 문중의 재실이 있습니다.
무태는 현재까지도 능성구씨 세거지이기도 하여 서변동 일대를 선비마을로 부른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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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세가 기본 정보
서계서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서계서원 소개
1781년(정조 5)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선 태종조 문예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오천 이문화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동화천의 서쪽에 있습니다 하여 서계서원이라 불렀으며, 서원 편액은 조선말의 명필인 윤용구가 쓴것입니다.
1801년(순조 1)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운 이주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습니다가 그 뒤 점차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동·서 협문 3칸의 강학당, 1칸의 서고, 각 3칸의 동재와 서재, 주사, 대문 등이 있습니다.
강학당은 화수정이라 칭하는데 1924년에 중건된 건물입니다.
동재는 금수랑이라 칭하며 서원 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장소 등으로 사용되며, 문헌과 가보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서재는 희리당이라 칭하여 유생이 강학하는 곳으로 사용하였으며, 창포리에 있는 환성정을 서재로 옮겨 왔다.
서고는 부용장이라 하여 유생의 휴식소 겸 숙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주사는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입니다.
뒷편에는 두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인 숭덕사가 있습니다매년 가을에 향사 지내고 있으며 소장전적으로는 오천실기 외 200여 권이 있습니다.
서계서원 안 밖으로 배롱나무꽃이 만발하여 여름날 서원의 경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옛 선비의 기개를 느끼게 합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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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서원 기본 정보
칠곡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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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향교 소개
향교는 조선조에 사문진작의 관학으로서 사학인 서원과 더불어 인재 양성의 산실로 지방 교육 문화의 거점이었습니다.
즉 서원이 지금의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공립학교인 셈입니다.
칠곡향교는 대구 신도시 칠곡지구 도심 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향교 정문 옆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고증할 수 있는 문헌이 남아있지 않고 현 위치에는 조선 인조 임오년(1642년)에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전학후묘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외삼문을 지나면 멍륜당이 자리하고 뒤편으로 대성전, 동무, 서무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도 봄, 가을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으며 대성전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는 이곳이 대성전 공간임을 알려주듯이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어 가을이면 노란 단풍과 함께 향교를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2013년 전통문화체험관인 양현당을 건립하여 기로연, 전통혼례를 비롯한 전통행사와 지역 청소년들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서예교실, 충효교실 등의 교양강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칠곡향교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www.chilgokhyanggyo.org/
운영 시간 상시 개방
※ 양현당은 강좌, 체험 내용에 따라 상이
주차시설 가능
쉬는 날 연중무휴
※ 전통문화체험관은 매주 토요일, 일요일 / 공휴일
환성정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환성정 소개
환성정은 1582년(선조 15) 이주가 27세에 금호강 변에 건립하였습니다.
임진왜란때 대구지방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주는 조선의 학자이며 성리학을 연구했습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사원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을 모집, 군량을 조달하고 초유사 김성일의 소모관으로 있었으며 뒤이어 체찰사 이덕형의 추천으로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향리에 묻혀 학문에 전념하다 서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환성정은 이주가 타계한 후 없어졌다가 1902년 이주의 9세 손인 수헌 이억상이 지금의 자리에 중수했습니다.
정자는 6칸이었고 동쪽에 건 편액이 경의재, 서쪽은 체인재다.
1971년에는 11세손 회연 이순희가 다시 중수했습니다.
조선 후기에 연재 송병선, 심석재, 송변순 형제와 면암 최익현 등 많은 우국지사들이 이 곳에 방문하여 교유하고 강학을 하며, 대구지역 최고의 정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환성정은 서계서원의 경내에 있으며, 인천 이씨 서계서원 보존회에서 관리하고 환성정 현판은 대원군의 친필입니다.
경내의 배롱나무는 2018년 보호수로 지정되었고 수령 270년, 높이 10m, 가슴높이 나무둘레는 115㎝이며 가지가 갈라진 쌍간 나무입니다.
이 보호수 외에도 총 10그루의 배롱나무가 꽃등처럼 경내를 환하게 밝혀 탐방객들을 반갑게 맞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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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성정 기본 정보
매양서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매양서원 소개
1705년(숙종 31)에 송원기(1548∼1615)를 향사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입니다.
후대에 그의 후손인 송명기, 송이석 부자를 추가로 배향하였습니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복건과 소실되기를 반복하다 2006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매양서원은 주향인 송원기의 입묘를 계기로 칠곡에 이주, 정착하여 세거해온 야로 송 씨 문중의 성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 칠곡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서원 중 하나입니다.
서원은 전체 영역이 축대 위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전면에 계단을 배치한 양정문을 정문으로 하여 강당인 구인당을 배치하고, 강당의 북동쪽에 단을 높여 별도의 담장과 내삼문을 갖춘 사우인 상현사를 배치한 병렬형 배치를 보여준다.
외삼문에는 양정문, 강당에는 매양서원, 사당에는 상현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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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서원 기본 정보
지금까지 대구 북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