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갈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충북 옥천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용암사(옥천)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용암사(옥천) 소개
* 쌍삼층석탑으로 유명한, 용암사(옥천) *
용암사는 충북 옥천군의 장용산 중턱에 자리 잡아 울창한 숲과 오랜 멋을 자랑합니다.
용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로 신라 때인 552년(진흥왕 13)에 의신(義信)이 세운 사찰입니다.
용암사에 있는 이 석탑은 일반적 가람배치와 달리 사방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자리잡고 있는데, 탑이나 건물을 세워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고려시대의 산천비보사상에 따라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 용암사의 볼거리, 보물, 쌍삼층석탑 *
용암사에는 보물인 옥천 용암사 쌍삼층석탑과 용암사 마애불상이, 용암사 대성전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남아있습니다.
쌍삼층석탑은 같은 모양의 석탑 2기가 자연 암반 위에 나란히 세워진 쌍탑으로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이 거의 체감 없이 비슷한 비율로 높게 서 있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이 탑은 여러 개의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이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상륜부(相輪部)를 갖추고 있습니다.
동탑의 높이는 4.3m, 서탑의 높이는 4.1m 정도로 두 탑의 규모면에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두 석탑 가운데 동탑은 대체로 완전하지만 서탑은 2층과 3층 탑신의 몸돌이 결실되어 다시 보수하였습니다.
이 석탑은 각 부분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서 간략화된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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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사(옥천) 기본 정보
운영 시간 일출~일몰
주차시설 있음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도보로 30분 거리)
쉬는 날 연중무휴
옥천 석탄리 고인돌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옥천 석탄리 고인돌 소개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에 있는 지석묘로 선사시대(先史時代)에 속하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 형식으로서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덮개돌인 개석(蓋石)을 받치는 받침돌이 땅 위에 새겨져 있어, 그 내부가 시체를 넣은 관(棺)의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땅 위에 만들어진 것을 북방식(北方式) 또는 탁자식(卓子式) 지석묘라고 합니다.
원래는 앞뒤를 막았던 받침돌이 있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없어졌다.
북방식 지석묘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보통 돌칼, 돌화살촉 등인데, 이 옥천지석묘에서는 갈돌대, 쪼으개, 가락바퀴 등의 껴묻거리가 출토되었고 지킴돌이 있습니다.
원래 있던 자리가 대청댐 수몰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1980년 2월 28일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습니다.
옥천 석탄리 고인돌 기본 정보
옥천 후율당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옥천 후율당 소개
* 조선시대 사당의 모습 그대로, 후율당 *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도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당으로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인 조헌(趙憲:1544~1592)이 보은현감(報恩縣監)을 사임하고 옥천(沃川)에 낙향하여 살 때인 1588년(선조 21)에 지은 것입니다.
스승인 이이(李珥)를 경모하여 그의 뒤를 잇습니다는 뜻으로 자기 호를 이이의 호인 율곡(栗谷)에서 율자를 따서 후율(後栗)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용촌 밤티〔栗峙〕에 당(堂)을 짓고 당의 이름을 후율당(後栗堂)이라고 하였습니다.
조헌은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도원(陶原) 또는 후율(後栗)이며, 시호는 문열(文烈)입니다.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에게서 배웠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후율당에서 의병을 일으켜 1,700여 명을 규합하여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승병(僧兵)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후 금산싸움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국하였습니다.
후율당도 임진왜란 후 퇴락(頹落)되어 가던 것을 1854년(철종 5) 후손들이 옥천군 백양동에 이건(移建)하였습니다, 1864년(고종 1) 현 위치로 옮겼으며, 1977년 중건(重建)하였습니다.
* 후율당 내에 있는 유물 및 유산 *
후율당 내에는 1621년(광해군 13)에 판간한 항의신편(抗義新篇) 판목(板木) 125장와 유림시판(儒林詩板) 10장, 선조가 내렸다는 조서(詔書) 1장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내(境內)에는 금산(錦山)에서 그를 대신하여 죽으려 했던 아들 완기(完基)의 효자각(孝子閣)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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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후율당 기본 정보
정지용 생가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정지용 생가 소개
1996년에 원형대로 복원되어 관리되고 있는 정지용 생가는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향으로 청석교 건너에 위치합니다.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면으로 길을 잡아 청석교를 건너면 ‘향수'를 새겨 놓은 시비와 생가 안내판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이곳이 정지용 생가이며, 생가 앞 청석교 아래는 여전히 ‘향수'의 서두를 장식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모습은 변한지 오래이지만 흐르는 물은 예전과 같아 맑기만 하다.
정지용 생가는 방문을 항상 열어두어 찾는 이에게 그의 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였음을 가구(家具)로 알리고 있으며, 시선가는 곳 어디마다 정지용의 시를 걸어놓아 시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습니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않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향수'의 시어 따라 방안에 배치된 소품 질화로와 등잔은 자연스럽게 ‘향수'를 다시금 음미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지용 생가는 두개의 사립문이 있습니다.
하나면 족할 것을 두개씩이나 문을 낸 뜻은 방문객의 동선을 고려하여, 또는 한 개의 문으로 드나드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하여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또 생가의 원형 그대로 복원했습니다 하니 물레방아 쪽 사립문은 텃밭 드나드는 용도로 원래부터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엌 문 옆을 본다면 돌절구, 나무절구와 공이가 놓여있는 자리 언저리, 이곳이 정지용 생가임을 알리는 표시판을 또 하나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표시판은 정지용의 모습과 함께 그의 태어난 년도, 날짜, 생가가 언제 허물어지고 다른 집이 지어졌다는 내용을 동판에 돋을새김하고 있습니다.
1988년 정지용의 해금조치가 있은 후 모임이 시작된 ‘지용회'가 생가가 복원되기 전 이곳 어디쯤에 그 자취만이라도 전하고자 붙여놓은 표시판을 기념삼아 다시 붙인 모양입니다.
‘지용회'가 정지용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버리지 않고 아끼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보통의 경우가 장독대는 뒤란에 위치하나, 정지용 생가의 장독대는 우물가 담장 밑에 다소곳하다.
우물 옆의 낮은 굴뚝도 눈여겨 볼일. 민가의 굴뚝은 그저 연기만 토해내면 그만이라 돌과 흙을 되는대로 쌓아 만들거나 깨진 항아리나 판자로 굴뚝을 만들어 뒤란에 두는 것이 보통이나, 어쩐지 이곳은 우물가 옆입니다.
낮은 굴뚝의 연기는 바로 흩어지지 않고 집 마당을 휘돌아 나가기 마련, 연기는 소독기능도 합니다하니 그 지혜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 정지용 생가의 유래 *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번지에서 1902년 5월 15일(음력)에 태어났다.
정지용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생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의 죽향초등학교)에 다녔으며, 14살 때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정지용의 본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다른 집이 들어섰으나, 1996년 7월 30일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습니다.
시인 정지용이 일본에 유학갈 때 고향을 그리며 쓴 시로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하였습니다.
한가로운 고향의 정경을 통하여 한 폭의 풍경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그의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입니다.
우리들의 가슴에 새겨진 고향의 정경을 오롯하게 담아낸 정지용의 시 ‘향수'는 이동원, 박인수의 노래로 다시 태어나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지용의문학이 살아 숨쉬는 곳]
* 정지용 문학관
정지용 생가 곁에 문을 열었으며, 정지용 문학의 실체를 보고, 느끼고,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문학전시실과 영상실, 문학교실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 장계관광지(멋진 신세계)
멋진신세계는 정지용의 시정세계를 공간적으로 해석한 공공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정지용시인의 시문학을 테마로 하여 조성한 '멋진신세계'는 충북 옥천의 구읍에서 장계관광지를 잇는 아트벨트 30리길을 이르는 말입니다.
멋진 신세계가 있는 장계관광지를 방문하면 시문학을 온몸에 느낄 수 있습니다.
* 옥천 향수 100리 자전거길(금강코스)
금강이 굽이치는 대청호반의 아름다운 강변과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향수의 고장 옥천의 시문학을 함께 즐기며 여유와 느림이 있는 시골 풍경과 정겨움을 느끼며 달릴수 있는 자전거길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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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생가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www.oc.go.kr/jiyong/index.do
운영 시간 09:00~18:00
※ 생가와 문학관 동일
주차시설 주차 가능
쉬는 날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날
금강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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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유원지 소개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강로 596에 자리한 금강유원지는 경부고속도로 휴게소로 유명하다.
휴게소 밑으로 펼쳐지는 강줄기가 유원지인 탓입니다.
휴게소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 일대를 흐르는 금강 유역을 금강유원지라 불렀습니다.
휴게소와 인근 마을에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소수력발전소를 돌리기 위해 라바댐을 설치했는데 그 위로 푸른 강물이 넘실댄다.
밑으로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 있습니다.
잠수교라 불리는 다리 중간에 항상 물이 차 있어 건너갈 때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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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유원지 기본 정보
옥천 석탄리 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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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석탄리 선돌 소개
선돌은 자연석이나 손질한 자연석을 마을 입구에 세워 재앙을 막고, 마을의 평화와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입석, 선바위, 수구맥이, 탑, 미륵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선돌 형태에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이 '안터 1호 선돌'은 안터 1호 고인돌에서 남동방향으로 210m 떨어져 고인돌 무덤방 방향과 일치하는 일직선상에 세워져 있습니다.
전체 크기는 260*92*54cm이며 지상에 드러나 길이는 195cm입니다.
선돌 밑부분은 대칭으로 손질하고 고인돌을 받쳤고, 선돌을 세울 때 쓰인 버팀나무 구덩 8개가 확인되었습니다.
선돌 아래쪽에는 쪼으기 수법으로 지름 90cm의 원을 만들어, 선돌의 전체 형태와 함께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선돌은 안터 1호 고인돌에 묻힌 사람을 나타내는 기념비적 기능과 무덤수호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보이며, 안터 1호 고인돌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터마을은 여러 형식의 고인돌과 많은 선돌이 집중 분포하고 있어 큰돌 문화의 중심지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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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석탄리 선돌 기본 정보
안터선사공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안터선사공원 소개
안터선사공원은 옥천의 선사시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안터선사공원에는 고인돌 1기, 선돌 1기가 있습니다.
석탄리 고인돌은 안터마을에 있던 3기의 고인돌 중 1977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안터1호 고인돌입니다.
덮개돌이 거북 모양이며, 판돌 4매를 짜 맞춰 무덤방을 지상에 축조한 탁자식 고인돌입니다.
발굴 당시 X 모양을 새긴 돌, 얼굴 모양의 예술품, 가락바퀴, 그물추 등이 출토되어 고인돌에 묻힌 이가 여자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인돌과 짝을 이루는 선돌은 아랫부분에 쪼으기 수법으로 지름 90cm의 원을 새겨 전체적으로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터1호 고인돌에 묻힌 사람을 나타내는 기념비적 기능과 무덤 수호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인돌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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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터선사공원 기본 정보
부소담악(추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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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담악(추소정) 소개
* 호수 위에 떠 있는 병풍바위, 부소담악 *
충북 옥천군 군북면 부소무늬마을에 가면 부소담악이라는 절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인데, 길이가 무려 700m에 달합니다.
조선시대 학자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추소팔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절경입니다.
부소담악은 처음부터 물가 절벽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산이었지만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산 일부가 물에 잠겨 물 위에 바위병풍을 둘러놓은 듯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부소담악의 장관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추소정입니다.
정자에 오르면 용이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형상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바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지만 수천 년 세월을 간직한 자연의 신비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부소담악의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협소한 능선길 아래는 시퍼런 물이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아찔한 낭떠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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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담악(추소정) 기본 정보
옥천 경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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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경율당 소개
* 학문을 공부하는 서당, 경율당 *
충북 옥천군 안남면에는 경율당이란 작은 한옥이 있습니다.
조선 영조 11년(1735)에 문인 전후회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서당입니다.
경율은 그의 호다.
평소 율곡 이이를 존경하여 호를 경율이라 하고, 서당 이름을 경율당이라 했습니다.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툇간을 달았고, 뒷면 창고방에는 서책을 보관하던 누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용마루에 얹은 장식기와에 ‘옹정30년을유’라는 글귀가 있어 1735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옥천 경율당 기본 정보
옥천 육영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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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육영수 생가 소개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는 육영수 생가가 있습니다.
육영수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 허물어진 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해 2011년 5월부터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이 집은 1600년대 정승을 지낸 김씨가 처음 지어 살았고, 이후 송 정승, 민 정승 등 3명의 정승이 살았던 집이라 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렸다.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육종관이 민 정승의 자손에게서 사들여 수리하면서 조선 후기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가의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99칸 집이었습니다는 이야기처럼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건넌채, 안채, 뒤채, 행랑, 별당, 후원, 정자, 연못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옥천 육영수 생가 기본 정보
운영 시간 화~일 09:00 ~ 18:00
주차시설 주차가능 (200m 떨어진 곳)
쉬는 날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지금까지 충북 옥천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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