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 갈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충남 금산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남이자연휴양림(금산산림문화타운)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남이자연휴양림(금산산림문화타운) 소개
남이자연휴양림은 레저와 가족단위 체류형 관광의 적합지이며, 활엽수종의 천연림이 울창하여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 그리고 기암절벽과 폭포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인근에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백제시대 성터인 문화재로 지정된 "백령성지"가 있고, 6.25때 치열했던 격전의 흉터를 간직한 "육백고지전승탑"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난 역사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합니다.
이 때문에 자연경관과 역사적 현장을 함께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휴양림을 감싸고 있는 선야봉(729m)에 오르는 등산로를 갖추고 있으며, 산정에서는 대둔산의 기암절벽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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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자연휴양림(금산산림문화타운)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gsforesttown.foresttrip.go.kr
운영 시간 숲속의 집 교육관, 휴양관 : 당일 14시부터 다음날 11시까지
주간용데크(데크평상) : 당일 18시까지
야간용데크(야영데크) : 당일 14시부터 다음날 12까지
주차시설 주차가능 (약 소형 350대, 대형5대)
쉬는 날 설날 및 추석연휴
보석사(금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보석사(금산) 소개
금산읍에서 약 6km 떨어진 진악산 (732m)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12년(866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한 역사깊은 절입니다.
교종의 대본산이며 한국불교 31본산의 하나로 지난 날 전라북도 불교의 이사중추기관이었고 현재는 충남 교구 산하로 되었습니다.
보석사라는 이름은 절 앞산 중허리의 암석에서 금을 캐내어 불상을 주조하였습니다는 데서 이름지어졌다.
사찰에 들면, 울창한 숲과 암석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있어서, 속세를 떠난 듯하다.
절 안에는 대웅전, 기허당, 의선각, 산신각 등의 건물과 부속암자가 있으며, 인근에는 절경의 12폭포가 있습니다.
특히 높이 40m, 둘레가 10.4m나 되는 1,1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가 있어 좋은 휴식처를 제공해 주며, 200~300미터 정도의 전나무길이 나 있어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 의선각
보석사 대웅전 앞에 있는 건물로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러 수도하던 곳입니다.
영규대사는 공주 계룡산의 갑사와 보석사를 내왕하며 도를 닦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중봉의 의병과 합세하여 금산이 왜적을 격퇴하려다가 700 의사와 함께 전사한 분으로 그용맹과 담력은 출중하여 싸움마다 크게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의선각은 영규대사가 보석사에 계실때 우거하던 곳으로 창녕위 김병주의 글씨로 된 의선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규모 - 정면 3칸, 측면 3칸
* 재료 - 목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보석사(금산) 기본 정보
주차시설 주차 가능
쉬는 날 연중무휴
금산 칠백의총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금산 칠백의총 소개
이곳은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 의사의 묘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조 25년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18일에는 호남 순찰사인 권율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은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입니다가 모두 순절하였습니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습니다.
그 후 선조 36년(1603)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인조 25년(1647)에는 사당 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현종 4년(1663), 이 사당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으며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왔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 그리고 횡당촌 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 선생과 무명의사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여 왔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경역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습니다.
광복 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 을 확장한 후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게 하고 있습니다.
이 비각에는 중봉 조헌선생 일군 순의비의 파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승장영규대사를 따라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 행적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금산 경찰서장 일본인 이씨까와 미찌오에 의하여 이 비가 폭파되었던 것을 인근 주민들이 뒷산에 묻어두었습니다가 8.15 해방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중 1971년 4월에 그 파비를 붙여서 다시 세우고 비각을 건립한 것입니다.
* 문화재청 주관으로 매년 9월 23일 15시 제향 행사실시(칠백의총 관리소 주최)
* 주요 소장 문화재
1) 보물(6종 7점) - 조천일기, 제문 2점, 선조대왕 교서, 중봉선생 교지(조헌 문과급제 교지), 전통(화살통), (조헌의병장 제수교서), 조헌 문묘배향 교서
2) 기타 유물 (8점) - 중봉전집, 항의신편 및 목각판, 심원록, 정기록,마상격문, 창살, 세독충정, 제봉문집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금산 칠백의총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700.cha.go.kr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주차시설 있음
쉬는 날 매주 월요일
진악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진악산 소개
진악산(737m)의 우람한 모습은 위대함과 굳건함의 표상으로 금산 고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금산의 역사 속에서 진악산은 크고 작은 싸움을 여러차례 지켜보았습니다.
옛날부터 나라의 안위를 봉화로 알리는 봉화대가 있었으며, 조선시대 임진년 8월(1592)의 금산벌 싸움에서 중 봉조헌 선생과 함께 싸우다 순국하신 기허당 영규대사는 진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석사에서 수도를 했고 그 인연으로 보석사 내의 의선각에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보석사 들머리에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는 위병승장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진악산은 해발 737m의 높이로, 충남에서 4번째 높은 산입니다.
주릉에 펼쳐지는 기암괴봉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금산 쪽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진악산을 감싸고 있는 숲도 무성하며 영천암과 원효암 골짜기의 개울도 좋다.
특히 진악산 북편 관음봉 일대의 암애와 암봉들, 원효암 일대의 기암괴봉과 폭포는 일품입니다.
명물 명소로는 보석사 입구에 전나무숲과 천연기념물인 1,1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있고, 천년사찰 보석사와 영천암, 원효암이 있으며 이밖에 영천암의 영천약수, 도구통바위, 봉화대, 관음암과 관음굴, 원효폭포, 물골의 바위굴은 명소로써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진악산 정상에서는 속리산과 서대산 천태산, 민주지산, 덕유산의 장쾌한 산줄기를 모두 볼 수 있으며, 운장산의 특이한 모습도 보이고 계룡산도 눈에 띈다.
진악산 기본 정보
홈페이지 금산 문화관광 http://www.geumsan.go.kr/tour/
운영 시간 00:00~24:00
주차시설 주차가능
쉬는 날 연중개방
개삼터·개삼각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개삼터·개삼각 소개
* 금산인삼이 처음 재배된 곳, 개삼터 *
충남 금산군 금산읍 남이면 개삼로 산자락에 개삼터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개삼터는 금산에서 최초로 인삼을 심은 곳입니다.
고려인삼의 종주지이며, 유통의 중심지이자 인삼의 고장인 금산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금산인삼이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진악산 아래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눕자 관음굴에서 지성으로 기도하던 중 산신령이 나타나 “관앙불봉 바위벽에 가면 붉은 열매가 3개 달린 풀이 있습니다.
그 뿌리를 달여 어머니에게 드리면 병이 곧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튿날 산신령이 알려준 풀뿌리를 달여 드리니 어머니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강 처사는 풀의 씨앗을 받아 성곡리 개안마을의 밭에 뿌렸는데, 그 뿌리 모양이 사람 비슷해서 인삼이라고 불렀습니다.
개삼터에는 산신령이 강 처사에게 인삼을 내리는 그림이 있는 개삼각과 강 처사의 집이 있습니다.
강 처사가 인삼을 얻어 재배하기까지의 과정을 모형으로 재현해놓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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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삼터·개삼각 기본 정보
천내강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천내강 소개
금산에서 동쪽으로 7km 지점에 산과 강, 옛 문화재와 임진왜란의 전적지가 금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곳이 금산의 명승지이며, 사계절 끊이지 않고 관광객이 찾아드는 천연의 모습을 간직한 곳입니다.
천내강은 제원면 저곡리와 개티 건너편의 천내강 사이에 있는 금강상류로, 담수어가 많이 잡히며 천내리 강가에는 고려시대 유물인 용호석(龍虎石)이 280m의 간격으로 서 있고, 강가에는 임진왜란 당시 금산군수로 적을 막다 이곳에서 순국한 권종의 전적비가 옛 격전지에 서 있어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저곡리 갯벌 옆산은 그 이름이 봉황대(鳳凰臺)로 강을 향해 높이 솟아 있어, 옛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습니다.
이 산마루에 봉황대라는 정자가 있어 찾는 사람의 좋은 휴식처가 되었습니다고 전하나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고 저곡리 뒷산에는 임진왜란 때 쌓은 성터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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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내강 기본 정보
신안사(금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신안사(금산) 소개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 동북쪽에 있는 해발 677m의 신음산 국사봉에서 내려온 지맥의 산록에 있는 신안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5년에 무염선사가 창건했습니다.
신라 진평왕 5년(583)에 무염선사가 창건한 이 절의 이름에 ‘몸 신’ 자가 들어간 것은 경순왕(재위 927∼935)이 천태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사에서 수학할 때 이곳에서 가끔 머무른 데서 유래합니다.
이 절집의 앉음새와 물 맑고 아늑한 주변 산세에 반한 경순왕은 “이곳에 있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라고 해서 이름 지은 것입니다.
경순왕이 보고 느꼈을 풍광과 분위기는 그로부터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신안사에는 대광전, 진향각, 극락전, 요묵당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광전과 극락전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불상은 10기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병화로 소실되어 태고사 등으로 5기를 이봉하고 현재 5기만이 봉안되어 있는데,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은 참배자에게 불심을 일으키게 하는 조선 미술의 걸작품입니다.
이 절이 흥할 때에는 반승 3,000여 명이 수학하였습니다 하며 불경, 불기 등 여러 가지 비품이 많았는데 6.25 전란을 겪으면서 모두 소실되어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절 앞을 흘러내리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신안사(금산) 기본 정보
홈페이지 금산군 문화관광 http://www.geumsan.go.kr/tour
운영 시간 09:00~18:00
주차시설 가능(소형 40대)
쉬는 날 연중개방
금산 천내리 용호석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금산 천내리 용호석 소개
용호석은 2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원면 천내리 마을 서쪽을 흐르는 강변에 있습니다.
제원대교에서 북쪽으로 500m 지점에는 용석(龍石),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북방으로 100m 떨어져 호석(虎石)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용석은 70×80cm 가량 되는 대석(臺石) 위에 조각되었으며 높이 138cm 전후, 폭 81cm인데 이름을 상징하는 듯한 여러 개의 과형 돌기(過形突起)와 그 사이에 꿈틀거리는 용의 몸체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입 양편에는 아가미와 수염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편 호석은 110×65cm의 장방형 대석 위에 앞발을 세우고 앉아있는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동체에는 두툼하게 융기(隆起)된 곡선과 원형을 교호(交互)로 조각하여 호랑이 털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몸체는 서쪽을 향하고 있으나 머리는 북쪽을 향하였으며 입을 크게 열고 있습니다.
이 용호석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피난 내려 온 공민왕이 자신의 능묘의 위치를 정하여 필요한 석물을 준비케 하였으나 개경에 환도한 후에는 그대로 방치하였습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 규모 - 용석 높이 138cm, 호석 높이 140m
* 재료 - 화강암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금산 천내리 용호석 기본 정보
금산 백령성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금산 백령성 소개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선치산(仙治山)의 동쪽에 있으며, 둘레가 약 200m에 이르는 백제의 테뫼식 산성(山城)입니다.
이곳은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통하여 영동/옥천에 이르는 전략상 요충지입니다.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靑丘圖)』에는 백자령(栢子嶺)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탄현(炭峴)으로 나와있습니다.
금산군의 외곽성(外廓城)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쪽을 제외한 동,남,북쪽은 거의 허물어졌다.
서쪽 벽의 남은 상태를 보면 바깥쪽 벽의 높이는 5.8m~6.9m 이고 안쪽 벽은 2.3m~3m이며, 성벽의 너비는 4m에 이른다.
성내에서는 백제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등이 발견되며 산봉우리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진악산(進樂山)의 관앙불봉(觀仰佛峰)의 봉수와 서로 교신하였습니다.
특히 견훤(甄萱)이 완산(完山)에 도읍을 정하고 도읍 방어를 위해 이 산성의 아래에 있는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景陽縣)을 설치하고 백령성을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 규모 - 둘레 207m
* 재료 - 석성
금산 백령성 기본 정보
지금까지 충남 금산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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