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 갈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충남 홍성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용봉산자연휴양림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용봉산자연휴양림 소개
고찰인 용봉사와 마애석불 탱화 등 국보급 문화유적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산 모양이 용의형상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습니다하여 예로부터 용봉산이라 부른다.
기암괴석마다 각양각생(병풍, 거북, 장군 등)의 형상을 하고 있어 경치가 뛰어나 제2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특히, 용봉산 정기를 이어받아 주변 10km 내외에는 최영장군, 성삼문선생, 한용운선사, 김좌진장군, 윤봉길의사 등 수많은 충신열사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산 정상 부근에 최영장군 활터 및 돌로 쌓은 성터 등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명산 입니다.
주변에는 홍성온천, 덕산온천, 수덕사, 간월. 부남호, 남당항 등 관광 유원지가 많아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 구역면적 - 181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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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자연휴양림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www.foresttrip.go.kr/indvz/main.do?hmpgId=ID02030080
운영 시간 [숙박시설] 당일 15:00~익일 12:00
주차시설 있음(2개소)
용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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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 소개
높이 381m로 큰 산은 아니며 험하지도 않으나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져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정상까지 산행하는 동안 수백장의 한국화를 보듯이 시각각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이 용봉산의 특징입니다.
이 산의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듯한 형상인데서 유래했습니다.
남방향 중턱과 서편산록에 완만한 경사가 길게 펼쳐져 있고 요소요소에 소나무 군락이 자연발생적으로 있으며, 장군바위 등 절경과 백제 때 고찰인 용봉사와 마애석불(보물)을 비롯한 문화재가 곳곳마다 산재합니다.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예산의 덕숭산(수덕사), 서산의 가야산, 예당 평야의 시원한 경치도 일품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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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 기본 정보
고산사(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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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사(홍성) 소개
고산사는 청룡산(235m)에 위치해 있습니다.
신라의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습니다고 전합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청룡산에 고산사가 있습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에는 실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4년 조사 과정에서 암막새에 천계(天啓) 6년6월 이라는 기록이 있어 대웅전은 임진왜란 이후인 1626년에 중건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앞뒤 간격이 좁은 대지에 대웅전이 있는데, 그 좌우에 요사채를 두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네모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중간에 기둥이 없는 것이 특색입니다.
대광보전 중앙과 우측에 있는 불상은 토불이고, 우측의 석불은 입상이며, 좌대석은 팔각과 사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단은 큰 막돌 두벌대로 쌓고 덤벙 주초로 초석을 삼았습니다.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쓰고 주심포식 공포를 짜올렸다.
절 안에 고산사 중수 현판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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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사(홍성) 기본 정보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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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소개
토굴새우젓으로 소문난 홍성군 광천읍 외곽 도로 사거리에서 우회전, 천수만 방면으로 향해 가다 보면 결성면 소재지가 나온다.
결성 우체국 앞에 이르러 우측으로 심하게 굽은 도로를 따라가면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에 닿게 됩니다.
양옆으로 과수원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한가로운 길에다가 안내판도 잘 되어 있어, 생가를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초가집 두어 채가 보이는데 바로 한용운 생가입니다.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오른 편에는 생가터 안내문, 왼편에는 초가로 지어진 관리사무소가 있습니다.
싸릿대 울타리로 복원된 만해 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 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로 한용운이란 문패가 걸려있어, 생전의 만해 선생이 마치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듯한 감상에 빠져든다.
댓돌이며 툇마루가 한없이 정겹고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 언덕배기를 올려보면 적송과 조릿대가 자란다.
슬쩍 방 안을 기웃거리자니 만해의 영정과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쓸쓸히 방문자들을 맞이합니다.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입니다.
생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위패와 영정을 모신 만해사라는 사당이 있어,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1879년 이곳 성곡리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생은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내면서 저항 문학에 앞장섰는가 하면, 불교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1944년 6월 69세의 나이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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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history.hongseong.go.kr
http://tour.hongseong.go.kr
운영 시간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관
주차시설 있음
쉬는 날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김좌진장군생가지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김좌진장군생가지 소개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은 1905년 홍성에서 호명학교를 설립하였고 1915년 광복 사건으로 3년간 옥살이를 했으며 청년학우회 회원, 한성일보 이사로 있습니다가 3. 1운동 때 만주로 건너가 북로 군정서를 조직, 총사령이 되었습니다.
1920년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청산리 싸움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하고 1925년 김혁과 함께 신민부를 조직,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1930년 한족 총연합회를 조직, 주석에 취임하여 독립운동에 힘쓰던 중 공산청년당원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광이 따로 있고 밖에는 마구간이 있습니다.
안채는 앞면 8칸·옆면 3칸의 기와집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2칸 부엌이 있고 아랫방과 윗방 각 한 칸씩 있으며, 통칸의 대청이 있습니다.
그 위에 방이 한 칸 있고 끝으로 툇마루가 있습니다.
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는데, 맨 끝방 주위에는 툇마루를 한 칸 높여 누각처럼 만들었습니다.
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으며 밖에 있는 마구간은 화장실과 마구를 3칸 집에 만들었습니다.
1991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본채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고 관리사 및 전시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또한 매년 10월에는 백야 김좌진장군 추모제와 청산리전투 전승기념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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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장군생가지 기본 정보
홈페이지 역사문화시설관리사업소 http://history.hongseong.go.kr
홍성 문화관광 http://tour.hongseong.go.kr
운영 시간 09:00~17:00
주차시설 주차 가능
쉬는 날 매주 월요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관), 1월 1일, 설날&추석
안회당과 여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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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당과 여하정 소개
안회당은 홍주목의 동헌으로, 오량으로 된 22칸의 목조와가이며, 고종7년(1870) 4월에 상량하여 전 주민의 정성과 정교한 기술로 완성한 관서로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안회당과 취은루는 사료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안회당 뒷뜰과 연접한 소당위에 있는 여하정은 고종 33년(1896)에 이승우 목사가 신축한 수상정으로 목조와 즙의 육각형 정자입니다.
규모는 3평 5합 5작에 불과하나, 옛 연못을 연련하여 누운 고목과 수면을 장식한 연꽃은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합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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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당과 여하정 기본 정보
조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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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문 소개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이며 홍성군의 관문으로 고종조에 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고 동서남북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망화문이라 하는데, 대원군이 친필로 하사하였으며 남문은 문루가 없는 홍예문이었습니다.
북문은 역대 목사들이 문루에서 사형수의 처형을 감시하기도 하였는데, 동학운동(1894) 때는 수백 명의 동학군이 여기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고종 광무 10년(1906) 항일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때의 흔적이 조양문 곳곳에 보입니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서문과 북문은 파괴되어 없어지고 조양문 또한 파괴되었으나 부분적인 보수로 퇴락되었던 것을 1975년 문루를 해체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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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문 기본 정보
홍성 홍주읍성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홍성 홍주읍성 소개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습니다는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습니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습니다고 합니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입니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며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됩니다.
안회당은 홍주목의 동헌으로 22칸의 목조 기와입니다.
역대의 홍주목사와 홍주 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던 관아건물로 현재 군청 후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하정은 목조 와즙의 육각으로 된 수상정으로 현재 군청 후정에 안회당 뒤뜰과 연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습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습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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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읍성 기본 정보
홍성 오관리 당간지주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홍성 오관리 당간지주 소개
절에서는 불교의식이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다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합니다.
이 당간지주는 홍성읍내의 경작지 한 가운데에 78㎝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습니다.
이 일대는 고려시대의 광경사(廣景寺)터로 알려져 있고, 석탑 및 석불좌상 등이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형태는 위로 오를수록 가늘어지고 위쪽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이 파여 있으며 가운데 깃대는 남아있지 않다.
기둥의 바깥 면에는 세로줄 문양이 새겨져 있고 기둥 머리부분은 둥글게 처리되었습니다.
두 지주 사이에는 낮은 대(臺)가 놓여 있는데 중앙에 둥근 구멍 하나가 뚫려있어 깃대를 세우던 자리임을 알게합니다.
높이가 4.8m이고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이 당간지주는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홍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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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오관리 당간지주 기본 정보
홍성 홍주의사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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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의사총 소개
조선말기(병오년) 홍성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 운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신곳입니다.
1905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 홍주 지역에서는 1906년(병오년)에 전 이조참판 민종식이 채광묵, 박인기, 이만식, 농민, 유생 구 관리를 중심으로 홍주성에 쳐들어갔는데 당시 홍성군수 이교석과 이주승도 처음에는 의병군에 호응할 기미였다가 일본군 다수가 입성합니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닫고 입성을 막아 부득이 물러난 후 3월 22일에 재차 홍주성에 쳐들어갔으며 5월 19일에 홍주성을 함락시켰다.
그 후 일본군이 5월 25일부터 홍주성의 의병군을 공격하여 30일부터 본격전이 시작되었으며 그 때에 일본군 대포에 의해 조양문이 부서졌고 중과 부적으로 의병 수백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대교리 일대의 냇가와 남산일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1949년 4월 5일 홍성군수 박주철과 홍성경찰서장 박헌교가 직원들을 인솔하고 현재 의사총이 있는 부근에서 식수하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하여 옛 노인에게 설명을 듣고 병오 항일의병시 전사한 의병군의 유골이 임시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충청남도에 그 사실을 보고하여 도비를 지원 받아 유골을 모아 이곳에 합장하여 분묘를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있게 하였습니다.
1992년 구백의총(九百義塚)이란 이름이 '홍주 의사총'으로 바뀌었으며 매년 5월 30일에 순국 의사에 대한 추모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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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홍성 홍주의사총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history.hongseong.go.kr
http://tour.hongseong.go.kr
운영 시간 09:00 ~ 17:00
주차시설 있음
쉬는 날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관)
지금까지 충남 홍성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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