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갈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경북 김천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황악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황악산 소개
황악산은 해발 1,111m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 신선봉(944m), 운수봉(74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준다.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하며 비단같이 부드러운 편이며, 초입 일대 계곡 양쪽으로 늘어선 노송과 참나무가 하늘을 덮어 장관을 이룬다.
이 산은 김천시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소백산맥 가운데 위치합니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이라고도 불렀으나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깊은 계곡에 옥같이 맑은 물,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가 아름답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으로 금오산, 북으로는 포성봉이 보입니다.
* 황악산의 참 멋 100%로 즐기기 *
서남쪽에 연봉을 이룬 삼도봉(三道峰:1,176m)·민주지산(珉周之山:1,242m)과 함께 소백산맥의 허리부분에 솟아 있습니다.
주봉(主峰)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봉(770m)·신선봉(944m)·운수봉(740m)이 치솟아 있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암봉(岩峰)이나 절벽 등이 없고 산 전체가 수목으로 울창하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能如)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 만하고 가을철 단풍 또한 절경을 이룬다.
그밖에 내원(內院)계곡과 운수(雲水)계곡의 경관도 뛰어나다.
북쪽의 괘방령(掛傍嶺)과 남쪽의 우두령(牛頭嶺)을 통해 영동군과 김천시를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포성봉이 보입니다.
등산시에는 직지사와 운수암을 거쳐 주능선에 도달하는 3~5시간 정도 되는 산행을 하게 되는데, 계곡길은 가파르지만 능선길은 경사도 완만한 편입니다.
겨울의 설화(雪花)와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악산 기본 정보
직지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직지사 소개
* 보물과 문화재의 창고, 직지사 *
김천역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황악산 기슭에 있는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년) 아도화상이 세웠다.
절 안 주위의 울창한 오랜 소나무와 깊은 계곡의 맑은 물, 가을의 단풍이 절경이며, 주위의 조경과 잘 어울려 있습니다.
경내엔 1천구의 아기부처가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비로전(일명 천불전)이 있으며, 1,000년 묵은 칡뿌리와 싸리나무 기둥의 일주문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전,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높이 1.63m의 석조약사 여래좌상(보물)이 있습니다.
직지사가 위치한 황악산은 김천시에서 서쪽으로 12km떨어진 소백산맥 가운데 위치하며, 예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1,111m)이라 불리었으나,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깊은 계곡에 옥같이 맑은 물,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가 아름답다.
* 직지사의 창건 설화 및 역사 *
직지사의 창건과 관계된 내용 가운데 주목되는 하나의 사항은 ‘직지(直指)’라고 하는 절 이름의 유래다.
직지는 보통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가의 용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직지사의 사찰명은 이러한 선종의 가르침을 표방하고자 하는 의도 속에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사적기 자료에는 사찰 이름과 관련한 또 다른 두 가지의 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창건주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창건한 이후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만한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습니다고 한 데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고 하는 설입니다.
다음 두 번째는 고려 초 능여(能如) 스님이 사찰을 중창할 때 자(尺)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의 손으로 땅을 재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찰명이 지어졌다는 설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직지사 기본 정보
수도암(김천)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수도암(김천) 소개
* 천 년의 역사가 고즈넉이 묻어있는 곳, 수도암 *
수도암은 수도산(해발 1,317m)의 상부에 위치한 도량으로, 옛날 도선국사가 이 도량을 보고 앞으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산과 도량 이름을 각각 수도산, 수도암이라 칭하였습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여 년 전터 부처님의 영험과 이적이 많다하여 사람들이 불영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수도암은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창건했습니다.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습니다고 합니다.
그 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경내에 있는 석불상과 석탑, 그리고 지형을 상징한 석물 등도 모두 천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서, 암자까지 걸어 오르는 숲이 우거진 오솔길은 아늑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 수도암이 위치하고 있는 수도산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과 대덕면,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소백산맥 중의 명산의 하나로서 동쪽에는 가야산 국립공원, 서쪽에는 덕유산 국립공원이 있어 경치가 수려하다.
가야산을 분수령으로 한 비교적 높은 산으로 일명 불영산, 선령산이라고도 합니다.
수도산에서 동남능선을 따라 가면 단지봉(1,327m)과 목통령을 거쳐 가야산에 닿습니다.
수도산 - 민봉산 - 가야산 능선 종주는 평균 고도 1,200m 고원에 수림과 초원, 바위길이 잘 어울려서 마치 지리산을 종주하는 느낌입니다.
수도계곡은 구비구비마다 독특한 절경의 연속이고, 산기슭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청암사 승가대학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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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김천) 기본 정보
주차시설 주차 가능
쉬는 날 연중무휴
개령향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개령향교 소개
1473년(성종 4)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습니다.
1522년에 현감 태두남(太斗南)이 중수하고 1563년에 현감 윤희주(尹希周)가 지방유림과 더불어 보수하였습니다.
1609년(광해군 1)에는 잦은 수해(水害)로 인해 동쪽으로 이건하였습니다가 1837년에 이호직(李豪直)의 주장에 따라 현 위치로 이건하였습니다.
민족항일기 말기에는 금산향교(金山鄕校)에 폐합되었습니다가 1946년 봄에 복원하였습니다.
폐합 직전에 개령면장 허신이 담장을 보수하고 1961년에 대성전을 개수하였으며, 1982년에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습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교직사(校直舍) 등이 있으며, 동재·서재나 동무(東廡)·서무(西廡)는 여러 차례의 이건으로 현존하지 않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대성전에는 5성(五聖)·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개령향교 기본 정보
김산향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김산향교 소개
조선 중기까지는 지방민의 교화와 자제들의 중등교육을 담당하였으나 근대에 이르러 향교 재산의 대부분은 학교조합에 이관되었습니다.
광복 후에는 성균관대학교 설립과 경상북도 유림회의 사업기금으로 수십 두락의 전답을 희사하고 나머지는 토지개혁으로 없어졌다.
1973년 현경길(玄慶吉)이 전교(典校)로 취임하여 6년에 걸쳐서 사재와 보조금으로 명륜당 등을 중수했습니다.
김산향교에서는 훈도(訓導)가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사대부의 자제는 대개 7, 8세 이전에 마을의 서당에서 한문의 기초를 배우고 15∼16세 정도 되면 향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았습니다.
유생의 수용 인원은 50명 정도로, 동서 양재에 기숙하였으며, 매일 출석을 기록하여 300일 이상 숙식해야만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과거 시험은 매우 까다로워 보통 수년에 걸쳐 소과에 응시하게 되며, 좀처럼 합격이 어려웠다.
소과에 합격하면 생원·진사의 호칭을 얻고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얻게 되어 대과(大科)에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경내에는 문묘(文廟)인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으며 한국 유현을 모시는 동무와 서무가 있습니다가 없어졌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된 채 향사만 행해졌다.
1985년부터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중학생을 대상으로 충효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김산향교 기본 정보
지례향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지례향교 소개
1426년(세종 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1485년(성종 16)에 현감 김수문(金秀文)이 명륜당을 부설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나 주민들이 대성전에 봉안되었던 성영(聖影)과 위패를 무사히 구해내어 매안(埋安)하였으며, 그 뒤 복원하여 향교로 옮겼다고 합니다.
1690년(숙종 16) 현감 유후광(柳後光)이 중수하였고, 일제 말기에는 금산향교(金山鄕校)로 폐합되었습니다가 지방유림의 계속된 진정으로 1946년에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6·25동란 때는 대성전의 피화(被禍)를 염려하여 전교(典校) 문맹곤(文孟坤) 등이 영정과 위패를 도곡리 문씨재실(文氏齋室)에 봉안하였습니다가 이듬해 전교 이건화(李建和)가 복원, 봉안하였습니다.
그 뒤 1973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서원의 대성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례향교 기본 정보
경양서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양서원 소개
송오(松烏) 여응구(呂應龜)·감호(鑑湖) 여대로(呂大老) 부자(父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 시대 숙종(1675~1720) 때 창건되었습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강당 건물은 남겨 둔 채 사당 건물을 철폐하였고, 현판을 '경당서당(鏡堂書堂)'으로 바꾸었습니다.
《송오문집(松烏文集)》·《감호문집(鑑湖文集)》 판본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경양서원 기본 정보
도동서원(김천)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도동서원(김천) 소개
경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도동서원은 1771년(영조47년) 불천위 충간공 이숭원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이후 1788년(정조 12)에 이숙기(李淑琦), 이호민(李好閔)을 배향하고 다시 1794년(정조 18)에 이숙감(李淑瑊>), 이후백(李後白)을 추향했습니다.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는데 1918년에 그 자리에 강당을 건립하고 명례당(明禮堂)이라 현액했습니다.
지금은 춘추로 향내 선비들이 모여서 이 어른들의 유덕을 기리며 향사를 모시고 있으며 이 서원에 모셔져 있는 오현(五賢)은 모두 연안 이씨(延安李氏)입니다.
도동서원(김천) 기본 정보
섬계서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섬계서원 소개
1802년(순조 2)에 창건되었으며, 1868년(고종 3)에 대원군의 명으로 헐어서 걷어 치우고 그 자리에 애석한 마음을 새겨 비를 세웠다.
1914년에 그곳에 강당만을 세웠다가 1959년에는 이 고을의 선비 이만영(李晩永) 박원동(朴元東) 이현돈(李鉉墩)등이 각지 유림에서 재건의 호소문을 내고 본손인 김연식(金淵植) 철규(喆圭) 석규(錫圭) 정연(貞淵) 정수(正洙) 등이 사방에서 모금하여 1961년에 봄에는 본당인 세충사(世忠祠)를 다시 세워 종전의 주향만 봉안 하고 별묘까지에는 힘이 미치지 못하여 본당을 가로막아 동에는 삼현(三賢)을 향배하여 춘추로 향사하고 있으며 지금 이만 영의 상량(上樑) 송문(頌文)이 있습니다.
섬계서원 기본 정보
원계서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원계서원 소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양오당(養吾堂) 송응현(宋應賢)과 그의 아들인 양곡(陽谷) 송걸(宋傑)을 배향하기 위해 세워졌다.
1927년 사림에 의해 원계서원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지금의 건물은 1972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골새 마을 뒤쪽의 산자락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충의문(忠義門)이라고 편액한 산형대문(山形大門) 안으로 들어가 마당을 지나면 강당이 있습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며, 평면은 가운데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입니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했습니다.
가구(架構)는 3량가(三樑架)의 단순한 구조이며 홑처마입니다.
사당(祠堂)은 강당 뒤의 경사진 대지 위에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원계서원 기본 정보
지금까지 경북 김천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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