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갈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전북 익산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익산 두여마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익산 두여마을 소개
두여마을은 호남고속도로와 1번 국도가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며 넓고 시원한 들판을 바라보면 누구나가 살고 싶어하는 훈훈한 인심의 마을입니다.
호남의 최초관문인 익산시 여산면은 마한/백제시대 여래비리국으로 출발하여 조선시대 여산현, 여산도호부 등을 거쳐 1914년 3월에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또한 지역 특성상 천호산과 용화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역으로 예로부터 신비한 효능을 지닌 황토흙의 넓은 평야지대에서 참외, 메론, 양파, 딸기등 품질 좋은 농축산물들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여산동헌, 이병기선생생가, 여산향교대성전, 남원사미륵전, 문수사대웅전, 백지사터, 현재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은 호남 유일의 자연동굴인 천호동굴(천연기념물), 대원군척화비, 천주교성지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익산 두여마을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invil.org/main/main.do
운영 시간 평일 09:00~18:00
점심시간 12:00~13:00
주차시설 주차 가능
쉬는 날 주말
미륵산(익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미륵산(익산) 소개
* 미륵사지를 감싸고 있는 산, 미륵산(익산) *
미륵산은 금마에서 북쪽으로 8리 정도의 거리에 금마면, 감기면, 낭산면에 걸쳐 있는 높이 430m의 산으로 옛날에는 이산의 동쪽에 이어져 있는 높이 350m정도의 낮은 산봉까지를 포함하여 용화산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구분하여 미륵사지가 있는 북쪽은 미륵산이라 하고 나머지 지역은 용화산이라 하고 있습니다.
미륵이나 용화는 모두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는 명칭으로써, 원래는 용화산이라 하던 것이 미륵사가 지어지면서 그 주변산만을 미륵산이라 칭한 것이라 보입니다.
이 산은 천호산의 줄기가 동서로 가로질러 이룬 산으로 북으로는 황산벌이 보이고 남으로는 멀리 호남평야를 바라보는 평지에 우뚝 솟아 있으며, 이산에서 발원하는 도천, 부상천, 궁평천, 등은 만경강의 상류를 이루며, 서해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산의 최고봉을 운제봉이라 하고 조금 낮은 앞 산봉을 장군봉이라 하는데, 장군봉에는 마치 장군이 투구를 쓴 것 같은 모양으로 생긴 까닭에 투구 바위라고 부르고 있는 바위가 있습니다.
‘여지승람’ 익산군 산천조에서는 “장군봉은 용화산에 있는데, 남쪽에 있는 바위에는 두어말의 기름을 녹일 수 있는 구멍이 파져 있어 이 바위를 등잔암이라 합니다”고 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여기서 말하는 등잔암은 지금의 장군봉 산정에 있는 투구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남록에 있는 거북바위를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북바위에는 가로 70cm 세로50cm 정도의 구멍이 파여져 있습니다.
* 미륵산에 있는 다양한 역사 체험 *
미륵산 안에는 미륵사지를 비롯하여 사자암, 죽사(지금은 없다.
사자암 서쪽으로 백보거리에 있었음), 수백암(지금은 없음, 사자암남쪽으로 이백보 거리에 있었음), 영혈사( 지금은 없음. 수백암 북쪽으로 1리의 거리에 있었음), 명적암(지금은 없음, 사자암 동쪽으로 이백보 거리에 있었음), 천장암(지금은 없음), 명적암 (사자암 동쪽으로 2리 거리에 있었음), 심곡사(현존), 석불사, 태봉사, 장안사지 등 절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서 볼 때 이 산은 백제, 신라, 고려 대를 이어 이 지역의 불교문호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산위에는 기준성이라 불리우는 미륵산성터가 있으며, 중턱에는 백제의 도요지가 여러 곳에 있어 삼족토기 등 백제 토기를 이곳에서 구워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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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익산) 기본 정보
원불교중앙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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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중앙총부 소개
원불교중앙총부는 익산시 신용동 국도 23번 도로에 원광대학교와 마주하고 있으며 1916년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이 구도 끝에 진리를 깨닫고 세운 종교로, 단군을 교조로하는 대종교, 최제우가 세운 천도교, 강일순이 세운 증산도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4대 민족종교의 하나입니다.
이 종교의 특징은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대상으로 믿는 종교로서 불법의 현대화, 대중화, 생활화를 특히 강조합니다는 점입니다.
매년 어린이 날에 전국적으로 민속큰잔치 마당을 열어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선조들의 슬기와 전통사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중앙총부는 원기 9년(1924) 9월에 교화 기지로 건설하여 공동생활 속에서 교화를 시작한 곳으로 소태산대종사께서 원기 28년(1943) 열반하기까지 주재하여 법을 펴신 전법성지입니다.
구내에는 초창 당시의 많은 역사적 자취가 보존되어 있으며 교단을 주재하는 종법사님을 비롯하여 최고 결의기구인 수위단회, 중앙집행기관인 교정원 및 감찰기관인 감찰원, 의결기구인 중앙교의회가 있는 원불교의 본부입니다.
원불교중앙총부에는 종법사, 수위단회, 중앙교의회, 교정원, 감찰원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법사란 교단의 최고 직위를 가르키며, 수위단회는 교단의 최고 의결기관입니다.
중앙교의회는 교단의 결의 기관으로 교헌개정, 예산결산, 중요교산처리 등 교단의 핵심적인 내용을 결의합니다.
교정원은 교단의 중앙 집행기관이며, 감찰원은 교단 내 사법 검찰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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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중앙총부 기본 정보
익산 낭산산성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익산 낭산산성 소개
전라북도 익산시 해발 162m의 낭산 정상에 있는 산성입니다.
익산 지역은 5세기 중엽부터 백제의 지방 중심세력이었고, 7세기를 전후하여 금강변의 웅포 지역보다 내륙에 위치한 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문화의 꽃을 피웠다.
미륵산에서 북으로 약 4km쯤 떨어진 낭산리 상랑부락 뒷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의 높이는 162m로, 이 산성은 일명 마한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여산에서 서쪽으로 약 5km쯤 떨어진 낭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선인봉을 돌로 두른 산성으로 전체 길이는 약 870m 정도이며, 현재 서남쪽에 15m, 남쪽에 8m, 동남쪽에 10m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쌓은 방법은 미륵산성과 비슷하며 성내에서는 백제 때의 것으로 보이는 흙으로 빚은 그릇 조각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남쪽에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약 2.8m 가량이 되며, 물 흐르는 곳이 2군데가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남쪽과 동쪽 그리고 서쪽의 성문터가 남아 있으며, 성의 동남부에서 주춧돌로 보이는 석재들이 흩어져 있어 건물터였음을 알 수 있으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구성, 마한성 등으로도 불리는데 마한성이라고 하는 것은 고조선의 기준왕이 내려와서 쌓았습니다는 전설에 의해서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지금까지 마한시대와 관련된 유물들이 밝혀지지 않고 있어서 마한시대에 만들었습니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성 안에서 백제 이래의 유물들이 발견되어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되고, 후세에 와서 익산 일대가 마한의 옛 도읍지였다는 점에서 마한성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산성은 정상을 둘러싼 형태로 북쪽은 거의 정상에, 남쪽은 일부 골짜기를 감싸고 있습니다.
익산 낭산산성 기본 정보
익산 토성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익산 토성 소개
* 백제의 숨겨진 문화를 찾아서, 익산토성(益山土城) *
익산토성은 금마면의 면 소재지에서 서북쪽 약 1.5km 떨어진 오금산의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에는 미륵산이 있고 앞쪽은 익산평야가 내려다 보입니다.
삼국통일 후 고구려의 왕족인 안승(安勝)이 보덕국(報德國)을 세웠던 곳이라고도 전하여 보덕성이라 부르기도 하며, 사적입니다.
1980년도에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학술발굴조사에 의하면 이 성이 석성임과 성 시설 중 남문지가 밝혀졌고, 수구도 새로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된 유물에 의하면 백제 말기에 와당류와 토기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미루어 무왕(600∼641, 재위)대의 성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성은 삼국통일 후, 신라 문무왕(661∼681년, 재위)때 고구려 왕족 안승이 보덕국을 세웠던 곳이라 하여 보덕성이라 부르기도 한 곳입니다.
혹은 서동설화와 관계를 맺고 있어 오금산성이라 부르기도 한 곳입니다.
오금산(五金山)의 구릉에 계곡을 감싸고 쌓은 포곡식(包谷式) 성으로 둘레가 약 450m입니다.
1980년 발굴조사한 결과,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역의 성벽 기초부분은 앞면에 높이 45cm, 너비 60cm, 두께 50∼60cm 크기의 직사각형 석재를 사용하여 단벽(段壁)을 쌓았고,벽석의 뒷면에는 깬돌 등의 잡석을 너비 5.2m 두께로 메웠음이 밝혀졌다.
두께는 5.5m에 이르고 남문 터에는 문루(門樓)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익산에 백제 유물이 많은 이유 *
익산토성에서 발굴된 유적은 벼루 조각 ·세발토기조각 등입니다.
대다수의 유물은 백제시대의 유물입니다.
이로 인해 익산토성은 백제의 전성기에 축성한 것으로 짐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익산 지역에는 유난히 백제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5세기 중엽부터 백제의 지방 중심세력이었고 7세기를 전후하여 금강변의 웅포 지역보다 내륙에 위치한 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문화의 꽃을 피웠다.
즉, 7세기를 전후한 백제문화의 전성기 때 백제의 중심지가 바로 익산이었기 때문에 익산에 유난히 백제유물이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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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토성 기본 정보
익산 미륵산성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익산 미륵산성 소개
* 백제시대의 산성, 익산미륵산성(益山彌勒山城) *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기준성(箕準城)·용화산성(龍華山城)이라고도 합니다.
익산 지역은 5세기 중엽부터 백제지방의 중심세력이었고 7세기를 전후하여 금강변의 웅포지역보다 내륙에 위치한 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익산미륵산성은 일명 용화산성입니다.
기준왕이 이 곳에 도읍하였습니다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성이 미륵산에 있기에 미륵산성이라고 하며, 미륵산의 명칭이 용화산이기도 하다.
기준왕이 도읍하였습니다기 보다는 마한의 여러 나라 중의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 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고려초에 전주를 근거로 할거하였던 후백제의 신검이 부왕 견훤을 쫓았을 때 고려 태조가 이를 토정 討征하여 마성馬城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습니다고 하는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입니다.
* 미륵산성을 경유하는 등산코스 *
해발 430m의 미륵산에는 정상을 기점으로 하여 북쪽에 있는 또 하나의 산봉우리를 향하고 있는 성 줄기는 다시 동쪽으로 꺾이어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남쪽은 역시 정상에서 동남으로 향하여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북으로 꺾이면서 수구를 향하여 내려간다.
아마 그 합쳐진 수구 근처에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석축으로 되어있는 성 줄기는 지금도 완연히 남아 있는데 수구가 있었던 곳은 이젠 옛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흔적이 산만하다.
산성의 둘레는 3,900척, 높이는 8척이며 성안에서는 석촉, 능철, 포석환,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미륵사지에서 하차하여 등산코스를 이용,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익산 미륵산성 기본 정보
익산 쌍릉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익산 쌍릉 소개
익산 쌍릉은 백제말기 굴식 돌방무덤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봉분이 동서로 약 200m의 사이를 두고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의 능은 '대왕뫼'라 불리며, 서쪽의 능은 '소왕뫼'라 불린다.
내부는 모두 부여 능산리 고분 돌방과 같은 형식으로, 백제 말기인 7세기 전반의 형식이며 부근의 미륵사지가 백제 무왕때 창건되었음을 감안하면 이 능은 무왕과 왕비의 능묘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며, 백제 무왕(武王)과 선화비(善花妃)의 능이라고 전하기도 합니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도굴된 기사가 있고, 1917년에 학술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그 구조는 원분(圓墳)으로 부여 능산리(陵山里)에 있는 백제 왕릉과 동일 형식에 속하는 판석제 굴식돌방으로 밝혀졌다.
이미 도굴되어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나, 당시의 돌방 안에서 비교적 완전한 나무널〔木棺〕이 출토되어 국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6·25전쟁 중 파손되었습니다.
* 익산 쌍릉의 크기와 구조 *
익산 쌍릉의 발굴 당시 높이는 3.1m, 양 무덤의 너비는 약 0.5km였다.
현재는 보수되어 대왕묘의 지름은 30m, 높이는 5m, 소왕묘의 지름은 24m, 높이은 3.5m입니다.
대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꼭대기에서 7.2m 아래에 있는데, 널방〔玄室〕규모는 길이 3.80m, 너비 1.78m, 높이 2.27m입니다.
남면 중앙에 널길〔羨道〕이 설치되었는데 널문〔羨門〕과 널길 입구는 판석을 세워 막았고 4면벽과 바닥·천장을 모두 돌널[板石]로 조립하였습니다.
바닥 중앙에는 널받침〔棺臺〕이 놓였다.
소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윗면에서 5.5m 아래에 있는데 돌방의 형식과 석재 등은 대왕묘와 같다.
널방은 길이 3.2m, 너비 1.3m, 높이 1.7m로 규모가 약간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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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 기본 정보
석불사(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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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사(익산) 소개
석불사는 한국 불교 화엄종 본산으로 종교 단체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찰에는 보물로 지정된 백제시대의 석불좌상과 광배가 있는데, 조성시기는 AD 600년경으로 여겨지며,삼국시대 환조불로서 국내 최대의 것이고, 광배 또한 최대 규모입니다.
창건연대는 백제무왕 7세기 전반에 미륵사지 창건에 앞서서 건축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석불좌상은 백제시대에 조성된 매우 귀중한 불상입니다.
높이가 156cm나 되는 거구의 여래좌상은 당당한 자세로 얇게 표현된 통견의 법의를 결과부좌한 무릎 위로 흘러덮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주형광배는 7개의 화불과 불꽃 무늬를 조각하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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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사(익산) 기본 정보
쉬는 날 연중무휴
나바위 성당(화산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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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당(화산천주교회) 소개
나바위 성당은 조선 헌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습니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 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습니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습니다.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입니다.
1916~1917년까지 흙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습니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습니다.
* 나바위 성당의 볼거리 *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볼거리로는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들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두 번째 볼거리로는 망금정을 들 수 있습니다.
망금정이란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서 지은 정자입니다.
이 정자는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하고 있는 데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벽면에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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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당(화산천주교회) 기본 정보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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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소개
* 고려 전기의 석탑, 왕궁리 5층석탑(국보) *
1997년 1월 1일 국보로 지정된 석탑입니다.
마한시대 도읍지로 알려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있는 석탑입니다.
1기단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수리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1965년 해체·수리하면서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때 발견된 고려시대 유물은 국보 제289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석탑의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지만 탑주변에서 "왕궁사" "대관" 등의 명문기와가 수습되어 궁성과 관련된 사찰이 건립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 탑 해체 복원시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부에서 금제 금판경과 사리함, 청동불상 등이 수습되어 국보 제123호로 지정되었는데, 이들 유물이 "관세음 음험기"에 나오는 제석사지 칠층목탑 내의 유물과 같은 종류이어서 제석사지 목탑과 관련되어 건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특징으로는 백제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른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의 석탑이며, 석탑 하부에서 백제시대 판축이 확인되어 백제 시대 목탑 또는 건물지가 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 왕궁리 5층석탑의 구조 *
높이 8.5m입니다.
기단부에 탱주(撑柱)가 2개 있는 사각형 석탑이며 옥신(屋身)과 옥개석은 모두 여러 개의 석재(石材)로 구성되었습니다.
옥신부는 4우주(四隅柱)와 탱주가 각출된 중간석 등 모두 8개로 되었고, 2층은 4면 1석으로 4개, 3층 이상은 2개의 석재로 조립하였습니다.
옥개석은 넓은 편이며 개석과 받침이 각각 다른 돌이고 받침은 3단씩입니다.
개석은 1층부터 3층까지 8석, 4층과 5층은4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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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기본 정보
지금까지 전북 익산 갈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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